6월 27일 화촌면 주음치리 육탄용사전적비에서 ‘육탄 11용사’ 제74주기 전승기념 및 합동추도식이 열렸다.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당시 6사단 제2연대는 6월 27일 아침 한계리와 북창을 잇는 큰말고개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한 다음 당시 6사단 제19연대의 지원을 받으며 29일 밤까지 북한군 제7사단의 서울 진출을 저지했다.
당시 지휘관 연대장 민병헌 중령의 지휘아래 육탄용사로 자원한 30명 중 독자, 기혼자, 막 결혼한 장병, 노부모를 모시는 병사들을 억지로 제외시키고 11명을 선발됐다. 그리고 11명 중 전차에 대한 지식이 있는 임택규 이등중사를 시켜서 자원한 용사들에게 전차의 약점이 무엇이며 손쉽게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고 시범을 보였다.
육탄 11용사는 각자 수류탄 2발, 안전핀을 뺀 박격포 81㎜탄 1개씩을 받아들고 연대수색대장 박준수 중위의 인솔아래 출발했다고 한다. “살아서 모두 만나기를 하늘에 빌겠다.” 떠나는 그들에게 연대장은 말했다. 곧이어 제3대대가 선두로 말고개로 향했다. 19연대는 말고개를 중심으로 동쪽 산기슭에 방어 배치를 끝냈다. 육탄11명의 용사들은 S자로 구불거리는 고갯길이 잘 내려다 보이는 곳에 양쪽 10m-20m의 간격을 두고 배치를 끝냈다.
그런데 도로 양편에 몸을 숨길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배수로가 훤히 보이기 때문이었다. 연대 지휘 본부는 대원들이 전부 전투 중 사살당한 것처럼 양쪽 도랑에 엎어져 있기로 결정했다. 대원들은 모두 죽은 척 엎드려져 있었다.
6월 28일 아침 인민군 전차11대가 캐터필더 바퀴 소리도 요란하게 고갯 마루로 올라가고 있을 때 11명의 육탄용사들은 가슴에 수류탄을 안고 사살당한 시체처럼 여기저기 엎어져 있다가 기습적으로 전차에 올라 수류탄을 전차 안으로 던져 넣어서 폭발시켰다.
1950년 6월 28일 홍천 말고개 전투에서 조달진 일병 등 육탄 11용사들은 적 전차 9대를 폭파 및 노획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이들 6사단 용사들의 혁혁한 무공으로 인민군은 춘천과 홍천에서 4일의 시간을 허비하고 서울 합류가 늦어져 결국 한국군이 한강 이남에 방어선을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마지막으로 낙동강전선을 형성하는데 공헌한 것으로 한국전쟁 연구사학자들은 말한다.
당시 11용사 중 한 명인 조달진 일병은 이 공훈으로 두 번이나 이달의 호국용사로 선정됐고, 1950년 10월 을지무공훈장, 1951년 화랑무공훈장, 2011년 10월 국군의 날 최고 영예인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홍천방송=유성근기자)